미국에서는 loser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친구들과 장난하는 식부터 정말 경멸하는 수준에 이르기 까지. 사실 패배자로 해석된 루저라는 표현 자체는 '바보 ,병신, 찐따, 찌질이' 이런 의미에 가까울수도 있다.

손가락으로 L자를 쉽사리 그려가며 하는 이 'loser'라는 표현은 그저 장난 스러운 아이들의 동작에서부터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 표현의 심각성은 상대적으로 무거워 진다고 볼수 있다.


스펙 [Spec] 시사용어
영어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다. 직장을 구할 때나 입시를 치를 때 요구되는 학벌∙학점∙토익 점수 등의 평가요소를 말한다.


우스갯소리로 태어나면서부터 스펙을 키워나가기 위한 과정이 부모로 부터 시작된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의 우수성을 위해서 거치는 과정을 생각하면 훨씬 전일지도.

이런 스펙의 경쟁은 심각하게 1차적으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기본 스펙
직장을 들어가기 위한 스펙
연애를 하기위한 스펙
결혼을 하기위한 스펙
본격적인 개인의 상품성을 높여야 하는 심각한 고민의 단계로 접어드는데.

인간에게 새롭게 스펙이라는 표현을 뒤집어 씌우고, 스펙의 시대라고 명명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우리는 너나할것 없이 누구나 개인의 스펙을 업그레이드 하기위해서 무한경쟁체제로 달려온것이 사실이다.

 
 
 



토익 점수며, 키높이 깔창, 결혼할 때 열쇠의 갯수, 학위의 수준, 구사할수 있는 외국어의 수, 계좌의 잔고, 부동산의 가치, 자동차의 배기량, 등등등..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것들이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혹은 몇가지 요소로 자리잡은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인데..

사실 이번 루저녀 사건은 결국 우리가 늘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고, 다만 그것이 다소 속물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는 감추고 싶기는 하지만 항상 바라고는 있던. 다소 모호한 그것을 그녀라는 타겟을 향해서 세상에 더욱더 선명하게 꺼집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루저라는 개념은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 또하나의 새로운 다소 동정적이며 루저가 루저가 아니다라는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이르러, 루저라는 마케팅 꺼리를 양산해내고, 문화적 아이콘의 생산구의 디씨인사이드를 통해서 또하나 포장된 형태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루저녀를 어떻게 비판할수 있을까?
왜 우리는 루저녀를 비판하고 있는걸까?
라는 물음을 던져볼만 할것 같다.
180이 이하라고 해서 비판받아야 하나 그럼 170이하를 루저라고 했으면 지금이랑 달라졌을까?
키라는 기준으로 잣대를 들이대서 그러한가? 이미 키라는 잣대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더 낫고 덜 낫고를 판다름 하는 기준이라는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을터인데.
 (어떤분들은 개인적으로 난 키에 관한 컴플렉스는 없다 라고 말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컴플렉스 이전에 나의 키가 누군가에 의해서 평가받는 한가지 요소가 되었다는 사회를 인정하지 않을수 있을까?)

어떤 분들이 지적하듯이 공영방송의 대본, 편집의 문제는 당연히 지적되어야 하는거겠지만.
유독 그녀만이 그렇지는 않은 우리의 세태에서 왜 우리는 그녀를 마녀로 몰아가며
그녀의 자퇴까지 운운해야 하는것인지 개인적으로는 이해를 할수 없다.

우리의 판단은 사실
이 스펙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달렸다.
스펙의 시대를 바꿔나가 볼것인가.
아니면 나 또한 혹은 나의 후손들이 스펙의 시대에서 상위 스펙을
갖출수 있도록 경쟁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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